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웨덴/역사/바사 왕조 (문단 편집) ==== 덴마크와의 토르스텐손 전쟁 승리 ==== 이제 30년 전쟁의 전황이 다시 유리해지자 총리 악셀 옥센셰르나는 AD 1643년 12월 오랜 앙숙인 덴마크에게 선전포고를 하며 총사령관인 렌나르트 토르스텐손의 이름을 딴 '토르스텐손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육지에서는 렌나르트 토르스텐손이 AD 1644년 2월 유틀란트 반도의 대부분을 점령했고 바다에서도 AD 1644년 7월 콜베르거하이데 해전에서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의 한 쪽 눈을 멀게 만드는 부상을 입힌 데 이어서 10월 13일 페마른 해전에서도 칼 구스타브 브랑겔의 활약으로 승리를 거두고 발트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크리스티안 4세가 왕위를 겸하고 있던 노르웨이에서는 크리스티안 4세의 사위인 한니발 세헤스테드가 분전했으나 덴마크의 불리한 전황을 역전시킬 수는 없었다. 결국 더이상 버티지 못한 크리스티안 4세가 강화 협상을 제안하자 유리한 조건으로 AD 1645년 8월 제2차 브룀세브로 조약을 체결해야만 했다. 이를 통해서 스웨덴은 덴마크로부터 노르웨이의 [[옘틀란드]], 헤리예달렌, 이드레, 세르나와 [[고틀란드]], [[사레마 섬|외셀]]의 영유권을 인정받았고 제2차 브룀세브로 조약 이행의 확실성을 담보하기 위해 할란드도 30년간 조차받기로 했다. 또한 스웨덴은 외레순 해협의 통행료를 완전히 면제받았고 크리스티안 4세의 아들인 프레데리크 3세가 관리자로 임명받았던 브레멘 대주교령과 페르덴 주교령의 영유권까지 넘겨받아 속령인 브레멘-페르덴 공작령으로 재편했다. 이렇게 하여 스웨덴은 북독일 지역에 영토를 확장하고 덴마크로부터 발트해의 제해권을 빼앗으며 [[스웨덴 제국|발트해를 내해로 둔 강대국]]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